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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SKT가 보여준 발상의 전환

[기자석] SKT가 보여준 발상의 전환
SK텔레콤 T1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의 경기는 볼 만한 수준을 뛰어 넘는다. 2017 시즌을 앞두고 '후니' 허승훈, '피넛' 한왕호가 영입되면서 주전으로 뛰는 모든 선수들이 월드 챔피언십 4강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기여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세밀한 부분까지 즐기는 하드 코어 팬들이나 프로게임단에게는 화두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2017 스프링 1라운드 MVP와의 2세트에서 독특한 밴픽 양상을 보여줬다.

블루 진영인 MVP가 1번 밴으로 말자하를, 2번 밴으로 자이라를 고르자 레드 진영에서 경기해야 하는 SK텔레콤은 쉔과 카직스를 금지했다. MVP는 3번 밴으로 르블랑을 택해야 했고 SK텔레콤은 제이스를 밴하면서 챔피언 선택 화면으로 넘어갔다.

이와 같은 양상은 2017 시즌에 거의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시즌이 개막한 지 이틀째부터 레드 진영에서는 1, 2, 3번 밴 카드를 르블랑과 카밀, 렝가로 거의 고정시켰다.

지금까지 치러진 48세트 가운데 레드 진영에서 르블랑, 렝가, 카밀을 초반 3개의 밴에서 금지하지 않은 경우는 14번 뿐이다. 이 가운데 9번은 시즌 개막전부터 9번째 경기까지였다. 정확하게 1월18일 MVP와 bbq 올리버스의 3세트부터는 레드 첫 3밴이 모두 르블랑, 렝가, 카밀에게 돌아가는 '대세'가 만들어졌다(2월6일 기준).

르블랑과 렝가, 카밀을 금지하는 일은 레드 진영의 숙명처럼 여겨졌다. 세 챔피언 모두 미드 라이너, 톱 라이너, 정글러 포지션에서 가장 강한 챔피언으로 알려져 있었고 하나만 풀리더라도 가져간 쪽에서 엄청난 화력을 발휘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이 금기를 가장 화끈하게 깨버렸다. 레드 진영으로 플레이해야 했지만 세 챔피언 가운데 하나도 금지하지 않았다. 앞서 밴픽 양상을 설명한 것처럼 MVP가 오히려 르블랑을 금지시켜야 했고 MVP가 카밀을, SK텔레콤은 렝가를 가져가면서 균형을 맞췄다.

SK텔레콤의 독특한 밴픽 결정은 철저하게 계산된 선택이었다. 르블랑과 렝가, 카밀을 누구도 금지하지 않았을 때 레드 진영인 SK텔레콤은 2개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다. 각 진영마다 3개씩 챔피언을 금지한 뒤 블루가 먼저 선택하지만 1개를 가져가고 레드가 2개를 가져가기 때문에 두 팀 모두 '르렝카'를 풀어준다면 SK텔레콤이 유리한 상황을 맞는다. MVP도 이를 알기 때문에 뒤늦게 르블랑을 금지시켰다.

이 계산 안에는 MVP의 성향도 반영됐다. MVP는 카밀을 가져감으로써 승리한 경우가 있다. 아프리카 프릭스와의 3세트에서 카밀이 풀리자 곧바로 가져갔고 강건모가 전장을 지배하면서 2대1로 최종 승리했다.

카밀이 풀렸을 경우 MVP가 먼저 가져갈 공산이 높다고 판단한 SK텔레콤은 카운터 챔피언까지도 준비했다. 허승훈이 마지막에 선택한 신지드였다. 신지드의 E스킬인 던져 넘기기는 카밀의 궁극기인 마법공학 최후통첩을 깨뜨릴 수 있다. 카밀의 궁극기는 대상을 4초 동안 일정 지역 내에 가두는 효과를 갖고 있어 강력하다고 악명이 높지만 신지드의 던져 넘기기를 통해 카밀을 궁극기 지역 밖으로 던져 버릴 경우 궁극기의 효과는 사라진다.

SK텔레콤은 이를 간파하고 허승훈으로 하여금 신지드를 택해 라인전을 수행하도록 작전을 짰고 허승훈은 실제로 강건모의 카밀이 궁극기를 썼을 때 역으로 솔로 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SK텔레콤의 밴픽 실험은 승리로 마무리됐다. 초반부터 킬 격차를 벌리면서 무난히 이길 것이라 예견됐지만 내셔 남작을 MVP에게 뺏겼던 SK텔레콤은 카밀을 내주고 가져왔던 렝가로 플레이한 '피넛' 한왕호가 스틸에 성공하면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최병훈 SK텔레콤 감독은 "레드 진영에서 '르렝카'를 금지하는 것이 공식화됐지만 잘 활용하면 우리 팀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라면서 "3개의 OP 챔피언이 초반에 모두 풀린다면 레드 진영에서 2개를 가져갈 수 있다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했더니 밴픽의 다양성을 도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밴픽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깬 SK텔레콤의 MVP와의 대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레드 진영은 무조건 르블랑과 렝가, 카밀을 금지해야 한다는 관성의 틈을 파고 들었다는 점에서 도전 정신을 높이 살 만하다. 밴 카드가 6개에서 10개로 늘어나면서 악용될 여지만 많아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SK텔레콤처럼 활용한다면 팬들에게도 재미있는 경기, 다양한 경기를 선사할 수도 있다. 최병훈 감독의 말처럼 SK텔레콤이 철저한 계산을 통해 무모함을 줄인 덕에 팬들은 '공식전 고인'이 된 카밀과 렝가를 볼 수 있었고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SK텔레콤이 보여준 밴픽의 미학은 아프리카 프릭스와 락스 타이거즈의 1세트와 2세트에서 반영됐고 카밀과 렝가가 풀리면서 새로운 볼 거리를 줬다. 롱주 게이밍과 bbq 올리버스의 2세트에서도 변형된 밴픽 양상을 보여주면서 렝가가 사용되는 모습도 보여줬다.

SK텔레콤은 단순히 선수들의 실력만 세계 최고가 아니다. 자그마한 틈이라도 만들려고 노력하고 연구하는 코칭 스태프의 숨은 공로도 팀을 최고로 만드는 디딤돌이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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