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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이영호를 정상에 다시 올려 놓은 팬의 힘

[기자석] 이영호를 정상에 다시 올려 놓은 팬의 힘
2017년 1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세대학교 대강당 앞. kt 기가 인터넷 아프리카TV 스타리그(이하 ASL) 시즌2 결승전을 취재하기 위해 오후 3시30분에 현장을 찾은 기자는 길게 늘어선 팬들의 행렬에 깜짝 놀랐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체감 온도가 낮은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의 전성기를 떠올릴만 했다. 오전부터 결승전을 보기 위해 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아프리카TV는 대기 순번표를 나눠주면서 편의를 도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을 보기 위한 팬들의 열정은 기다림을 택했고 엄청난 대열을 만들어냈다.

입장이 시작되자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세대학교 대강당은 순식간에 인파로 가득 찼다. 팬들이 더 들어올 경우 인사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에 아프리카TV 측은 팬들을 돌려 보내야 했다. 돌아가는 팬들은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보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팬들의 기대만큼이나 결승에 진출한 이영호와 염보성의 경기력은 훌륭했다. 1, 2세트를 장기전으로 끌고 간 두 선수는 2세트에서 배틀 크루저까지 뽑으면서 테란전의 진수를 보여줬다. 오래만에 등장한 명품 테란전에 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고 이영호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우승자에게는 축하를, 준우승자에게는 위로를 보내는 성숙함을 보여줬다.

이번 ASL 시즌2는 '택뱅리쌍'이 모두 참가해 시작부터 화제를 모았다. 8강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는 이제동과 송병구의 8강전, 이영호와 이제동의 4강전을 통해 극한까지 달아 올랐고 연세대학교 대강당을 가득 메우면서 절정에 달했다.

ASL 시즌2 결승전을 관전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대강당을 가득 메운 팬들(사진=아프리카TV 제공).
ASL 시즌2 결승전을 관전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대강당을 가득 메운 팬들(사진=아프리카TV 제공).

우승자인 이영호는 소감을 밝히면서 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이영호 개인적으로 ASL 시즌2에 임하는 각오는 남달랐다. 은퇴 이후 스타1 스트리머로 활동하면서 참가한 첫 시즌인 시즌1에서 8강에 만족해야 했던 이영호는 시즌2에서 우승을 노렸지만 평생의 라이벌들이 총출동하는 바람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8강에서 김택용과 송병구가 떨어졌지만 4강에서 이제동을 만났고 3대2로 간신히 승리한 이영호였다.

염보성과의 결승전을 준비하면서 이영호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털어 놓았다. 테란 2명이 결승전에 올라가자 팬들 사이에서는 '테란 사기'라는 여론이 형성됐고 안티 팬들이 이영호의 개인 방송에 악성 댓글을 남기면서 이영호를 괴롭혔다.

이영호는 "결승전을 앞두고 왜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는지 이유를 모르니까 답답했고 힘들었다"라면서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할 상황까지 정신력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영호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계기도 팬들 덕분이었다. 이영호의 개인 방송 채팅창이 악성 댓글로 '도배'될 때에도 팬들은 힘내라, 응원한다는 말로 기운을 북돋워줬고 그 덕에 회복할 수 있었다고.

이영호의 우승 소감은 팬으로 시작해서 팬으로 끝났다. ASL 시즌2를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팬들이 많았기에 더 힘이 나서 경기를 준비했고 팬들에게 부끄러운 경기력을 보여주기 싫었기에 선수들의 경기력이 올라갔다는 것이 이영호의 분석이다.

결승 현장을 찾은 팬들의 모습이나 응원 함성을 들었을 때 스타1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다고 했다. 멘탈을 깨뜨린 것도 팬이었지만 부활시킨 것도 팬이었기에 이영호는 감사할 따름이라고 답했다.

이영호 뿐이겠는가. ASL 시즌2에 참가했던 선수들 대부분이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명이 다했다고 하는 스타1으로 진행되는 리그이지만 팬들이 현장을 찾으면서 산소를 만들어줬고 선수들은 전성기 때 느꼈던 공기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팬의 힘은 죽었던 리그도, 힘이 빠졌던 선수들에게도 스팀팩을 불어 넣어준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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