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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유일한 30대 워3 선수 노재욱 "사과합니다, 함께합시다"

[피플] 유일한 30대 워3 선수 노재욱 "사과합니다, 함께합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e스포츠의 최대 화두는 30대 프로게이머가 탄생할 수 있느냐였다. 1세대 프로게이머의 대표 주자였던 임요환의 기세가 꺾였고 10대 후반의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들이 탄생하면서 20대 중반에 불과한 선수들이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게다가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인 국방의 의무가 선수 생활을 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안고 있었다. 그렇지만 2006년 공군이 프로게임단 에이스를 만들면서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 선수들의 고민은 해결됐다. 임요환은 전역 이후 현역 선수로 복귀하면서 30대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뒤를 이어 임재덕이 3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타크래프트2에서 우승컵까지 거머쥐면서 30대도 현역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만방에 증명했다.

여기 또 한 명의 30대 프로게이머를 노리는 선수가 있다. 워크래프트3(이하 워3) 종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루시퍼' 노재욱이다.

워3를 챙겨보는 팬이 아니라면 노재욱이라는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문' 장재호, '린' 박준 등이 유명세를 얻었지, 노재욱은 그다지 유명한 선수는 아니다. 국내 대회에서 딱히 우승한 적이 없고 국제 대회에서도 2006년 ESWC에서 챔피언에 오른 것이 유일한 성과다.

ESWC에서 우승한 이후 햇수로 10년이나 된 노재욱이지만 아직까지 워3 프로게이머로 여러 대회에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스 스톤, 스타크래프트2, 모바일 게임까지 도전하면서 게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왜? 게임이 좋고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에 자부심을 느끼니까.

◆병법서를 읽던 아이
1986년생인 노재욱은 우리 나이로 30세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를 접한 노재욱은 중학생 형들을 척척 잡아낼 정도로 게임에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에서 소위 '잘 나가는' 동기들에게 위협을 받을 때에도 PC방에서 스타1으로 인연을 맺은 선배들이 "재욱이가 게임짱이니까 건드리지 마라"라고 구해줄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2003년 워3가 출시되면서 노재욱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스타1은 이미 너무나 많은 레전드들이 있을 때여서 전략적으로 판단했고 워3를 택했다. 블리자드가 만든 게임이기에 흥행될 것이 분명했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면 레전드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병법서를 잃었어요. 아버지의 권유로 손자병법을 읽었고 신세계를 경험했죠. 이후 용돈을 모아 병법서를 하나씩 사서 읽었죠. 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고 지금도 지침서가 되고 있어요."

[피플] 유일한 30대 워3 선수 노재욱 "사과합니다, 함께합시다"

병법서에 능했지만 어려서인지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는 패기가 앞섰다. 스타1에서 저그를 가장 잘 다뤘던 노재욱은 워3를 준비하면서 크립이 퍼지는 언데드를 선택했다. 노재욱이 후회하고 있는 가장 큰 패착이었다.

"언데드라는 이름과 종족의 특성이 멋졌어요. 죽지 않는 자라는 뜻이잖아요. 그리고 크립이 퍼져 나가면서 뭔가 장악하는 느낌도 들고요."

초기 워3 리그에서 언데드 선수들이 드레드 로드를 택했던 반면 노재욱은 데스 나이트와 리치의 코일, 노바 조합을 들고 나오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전략 하나로 노재욱은 천정희, 오정기 등과 함께 6대 언데드에 들어가기도 했다.

◆'억강 선생'의 등장
훌륭한 실력을 갖춘 신예 노재욱은 이재균 감독이 이끄는 한빛 스타즈의 워3 선수로 영입됐다. 여러 국내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안정적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던 노재욱은 일순간 떠돌이가 됐다. 노재욱 뿐만 아니라 모든 워3 선수들이 겪어야 했던 일이기도 한 이 사건은 워3 팬들 사이에서 '장조작' 사건으로 불린다.

"MBC게임의 워3 리그가 최고라고 꼽히던 시절 해설자였던 한 사람이 맵을 건드리는 바람에 문제가 일어났죠. 선수들이 이를 알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그 사람이 물러났지만 이후로 후원사가 잡히지 않으면서 대회 공신력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팀들도 대부분 해체됐죠."

외국팀인 MYM 소속으로 선수 생명을 이어가던 노재욱은 2009년 군에 입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2011년 제대한 이후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한 노재욱은 타이루에 입단하면서 선수 생명을 이어갔다.

노재욱이 워3 선수로 계속 뛰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워3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가 출시된 이후 장재호가 두 종목 병행-사실상 스타2에 올인했다-을 선언하면서 워3만 주력하는 선수가 사라졌지만 노재욱이 명맥을 이어가겠다고 나섰기 때문.

워3 팬들이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감지한 노재욱은 클랜전에 출전,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웨라 클랜 소속으로 출전했던 대회에서 노재욱은 팀이 0대2로 지고 있던 상황에 출전, 네크로 폴리스를 상대 진영에 지었다. 비매너 플레이라고 규정한 팬들은 노재욱에게 비난했고 노재욱은 미니홈피에 '억울하면 강해져라'라고 쓰면서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프로게이머 초창기 선후배 관계가 강한 한빛 스타즈에서 활동하면서 예의를 중시하라고 배웠고 군에서도 큰 문제 없이 생활했어요. 복귀하자마자 제 플레이를 본 팬들이 오해하기 시작했고 미니홈피 글로 가중되면서 어느 순간 '억강 선생'이 되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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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캐릭터와 조증
팬들의 비난을 처음 경험했던 노재욱은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다. 팬들에게 오해를 사면 해명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정상적인 발상이지만 오랜만에 워3 팬들이 대동단결하며 커뮤니티가 뜨거워지는 모습을 본 노재욱은 프로레슬링에서 악역 캐릭터가 떠올랐다.

"제가 욕을 먹더라도 워3 팬들이 다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업계 전체에는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돌아이'가 되어 보겠다고 마음 먹었죠. 이재균 감독님이나 부모님, 클랜 마스터 등 아는 분들에게는 '제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내 진심이 아니라 워3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일이니 아파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죠."

악인을 자처한 노재욱은 타이루팀에 속해 있던 'TH000' 후앙시앙, 'Infi' 왕수웬 등 선수들과 함께 클랜전에 출전하기 위한 방법을 타진했다. 당시 워3 대회는 '쥬펜더'라고 알려진 클랜 마스터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노재욱은 프로게이머들도 함께 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쥬펜더 또한 프로게이머들의 참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진행하려 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아마추어 중심의 대회로 성격을 규정했고 노재욱에게 안되겠다며 정중히 의사를 전달했다.

노재욱은 쥬펜더의 개인 방송 도중 "한의원(쥬펜더는 한의사 출신 워3 팬으로 알려져 있다)에 가서 사고를 쳐도 되겠냐"고 채팅을 남겼고 이 글이 캡처되면서 엄청난 안티팬을 '양성'했다.

노재욱은 "제가 사고쳤죠.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워3가 스타에 밀리면서 팬이 없을 때여서 제가 악역을 자청하고 나섰는데 너무 멀리 갔어요. 주위 분들도 제가 잘못했다며 사과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팬들로부터 비판과 욕설을 들은 노재욱은 아버지의 권유로 워3가 아닌 다른 쪽 일을 알아봤다. 대구에서 외환선물거래를 하는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관련 업무를 배우기도 했고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게임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중 노재욱은 큰 병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조증이었다. 의학적으로 조증은 기분이 항상 올라가 있고 의욕이 높은 상태가 병적으로 지속되는 병으로 규정되어 있다.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일시적으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면서 장애를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스타에 보면 아드레날린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이동 속도나 공격 속도가 빨라지죠. 조증은 쉽게 말하면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계속 나오는 거에요.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는거죠. 진정제를 써서 내려 오지 않으면 죽음까지 이르는 병입니다."

전역 이후 워3 리그가 활성화되기 위해 악역을 택하고 일부러 싸움을 걸고 '어그로'를 끈 일은 노재욱의 선택이었지만 조증으로 인해 판단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벌인 일이기도 하다.

◆워3와의 끊을 수 없는 인연
1년 가까이 워3와 떨어져 있던 노재욱은 IEF 국가 대표 선발전에 출전, 태극 마크를 달았다. 외환선물 거래를 배우면서 몰래 연습했던 결과를 얻어낸 것. 물론 본선에서는 4위에 머무르면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스승님이 알려주신 "프로게이머로 세계 챔피언을 했던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몸소 실천해서 뿌듯했다고.

2013년 노재욱은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다시 한 번 도전했다. 2012년 WCG가 워3 한국 대표를 선발전이 아닌 지명으로 뽑은 것에 대해 분노했던 노재욱은 2013년 선발전이 열리자 아버지 몰래 '주경야겜'하면서 태극 마크를 따냈다. 비록 전패 탈락했지만 노재욱은 자부심을 느꼈다.

"WCG가 2013년 그랜드 파이널을 열면서 '아듀, 워3'를 선언했잖아요. 더 이상 워3 대회를 열지 않겠다는 뜻이어서 아쉬움이 컸지만 출전한 6명의 선수들에게 반지를 하나씩 나눠줬어요. 워3 선수들에게는 절대 반지라고 불리는 그 반지죠."

WCG가 끝난 이후 노재욱은 하스 스톤으로 전향했다. GEM 소속으로 하스 스톤 프로게이머를 선언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조증이 심해지면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 탓에 왔던 기회를 차버린 적도 있다.

2014년 겨울부터 노재욱은 다시 워3를 손에 잡았다. 중국이 주최하는 온라인 대회인 아이펭컵에 매주 출전해 준우승을 연이어 차지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펭컵은 매주 주말 온라인 대전을 펼치는데 왕수웬과 후앙시앙 등 워3 레전드였던 선수들도 자주 출전한다.

"상금이 정말 짜요. 1등하면 100위안(한화 약 17만 원)이 주어집니다. 짜죠? 그래도 워3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피플] 유일한 30대 워3 선수 노재욱 "사과합니다, 함께합시다"

◆다종목 프로게이머가 꿈
30대가 된 노재욱은 워3만 잘하는 선수로 남고 싶지는 않다. 2014년 하스 스톤에 뛰어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프로 워3 선수가 아니라 프로게이머라면 다양한 게임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스타2도 시작했다. 현재 프로게임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칭 스태프가 그랜드 마스터까지 달성하면 영입을 고려하겠다는 제안에 흔쾌히 응한 것.

"혹자는 30대면 정신 차리고 확실한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더라고요. 저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있어요. 적지 않은 돈이지만 상금을 타냈고 워3, 하스 스톤을 중심으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면서 생활할 정도는 벌고 있습니다.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제가 직업을 이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노재욱의 단기 목표는 2015년에 열리는 WCA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워3 종목에 100만 위안(한화 약 1억7,000만 원)의 상금이 걸려 있는 이 대회에서 최고가 된다면 명예와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다. 이 대회에 집중해야 하겠지만 노재욱은 여러 게임을 해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다. 하스 스톤, 스타2는 물론 최근에는 넥슨이 서비스하는 '삼검호', '타이탄', 슈퍼셀의 '클래시 오브 클랜' 등의 문파장, 클랜장 등으로 맡고 있다. 워3할 때 쓰던 '루시퍼(Lucifer)'라는 아이디로 모바일 게임까지 즐기는 노재욱은 팬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역 이후 못나게 굴었던 것을 조증 탓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워3를 사랑하는 팬들, 노재욱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에요. 시간이 흘렀고 저도 30대가 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고 있습니다.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게임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신생아라고 생각합니다. 소통할 문호를 열어 놓을테니 많이 꾸짖어주시고 제가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주세요."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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