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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이승석 "프로게이머여서 행복했어요"

[피플] 이승석 "프로게이머여서 행복했어요"
이번 비시즌에는 다른 팀들에 비해 유독 SK텔레콤 선수들의 은퇴 소식이 자주 들렸습니다. 프로토스 도재욱과 e스포츠에 한 획을 그은 김택용, 그리고 지난 주에는 'e스포츠계 박지성'이라 불리며 주장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이승석까지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이승석은 먼저 은퇴를 선언한 도재욱과 김택용보다 인지도가 높은 선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들 특히 SK텔레콤 선수들에게 이승석의 은퇴는 그 어떤 소식보다 속상하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이승석은 분위기 메이커임과 동시에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한 선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승석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특히 기자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예의 바르면서도 친근한 매력을 지닌 선수였던 이승석.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기자들의 안타까움을 가장 많이 받았던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성품이 너무나 순수하고 착해 손해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성격이 착해 가진 실력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했던 비운의 사나이였습니다.

은퇴 소식이 전해진 뒤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했을 때도 이승석은 의아한 목소리였습니다. 이승석은 "그냥 이렇게 은퇴할 줄 알았는데 진짜 인터뷰를 해주시는 것이냐"고 거듭 물어보더군요. 이승석은 "개인리그도 한번 뚫어보지 못해 별다른 말도 못하고 은퇴할 것 같아 아쉬움이 컸는데 너무나 감사하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오히려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가 더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e스포츠처럼 승부의 세계와는 맞지 않은 성격을 가졌던 이승석. 그래도 그는 프로게이머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이승석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피플] 이승석 "프로게이머여서 행복했어요"

◆사랑하는 e스포츠, 사랑하는 동료들
이승석은 인터뷰 장소를 용산으로 정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현장에 왔기에 지긋지긋 할 법도 한데 이승석은 프로게이머로서 공식적인 마지막 자리를 용산에서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승석은 진심으로 e스포츠를 사랑하는 프로게이머였던 것입니다.

"e스포츠는 제 삶의 전부였고 꿈이었죠. 비록 제가 e스포츠에 큰 획을 긋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 e스포츠는 꿈이고 희망이에요. 삶을 함께 했던 용산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습니다."

사실 이승석은 개인리그 16강에 진출해 본 적도 없고 프로리그에서도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던 선수였습니다. 성적과 애정이 비례한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승석은 e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크지는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승석의 e스포츠 사랑은 개인리그에 수십 번 올라간 선수보다 더 컸습니다.

그가 얼마나 e스포츠를 사랑하고 걱정하는지는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에 대한 답변에서도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개인리그 결승전에서 패했다거나 연패했던 기억을 이야기하죠. 그러나 이승석의 답변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피플] 이승석 "프로게이머여서 행복했어요"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안타까웠어요. e스포츠가 폭풍우에 휘말렸고 복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잖아요.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그 일이 e스포츠 산업을 축소시켰고 지금의 위기를 가져오는데 큰 영향을 미쳤잖아요. 프로게이머들이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던 승부조작 사건은 제 프로게이머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어요."

대인배라고 해야 할까요. 외모만 박지성을 닮은 줄 알았더니 생각이 깊은 것도 '캡틴 박' 박지성을 빼다 박은 이승석. 더욱 놀라운 답변은 바로 다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은퇴를 선언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쉽습니다. 현재 선수들은 게임을 할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텅 빈 관중석을 보면서 선수들은 한숨을 쉽니다. 스타크래프트2가 재미 없다고 하는데 아마 선수들이 의욕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되는 것 일수도 있어요.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답답한 것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게임 핑계만 대고 있는 현실이죠. 누구도 다시 예전으로 돌려놓을 수 없잖아요. 이런 곳에서 동료들이 계속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은퇴를 선언한 뒤 마지막으로 하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e스포츠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며 진심 어린 걱정을 드러낸 이승석. 그가 하는 말 하나 하나가 틀린 말이 없었기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계속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습니다.


[피플] 이승석 "프로게이머여서 행복했어요"

◆'착한 이승석' 프로게이머로서는 최악의 성격
개인리그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경기가 바로 내일인데 친한 친구가 힘든 일이 있다고 술 한잔을 청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은 친구의 청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특히 최고의 프로게이머일수록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합니다. 사실 이런 것이 프로 정신이겠지만 지인들에게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지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석은 오히려 동료들에게 "제발 좀 본인부터 챙겨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개인리그 16강에 오르기 위한 경기를 앞두고 이승석은 한 동료로부터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죠. 그는 한 걸음에 달려가 그 친구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경기에서 이승석은 보기 좋게 탈락했습니다.

"착한 것이 아니라 프로답지 못한 것이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프로게이머로서 경기에 나가 이기는 것만큼 저에게는 친구도 지인들도 소중했어요. 20년 넘게 그렇게 살아왔는데 한 순간에 안면몰수하기에는 무리였죠."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이승석은 프로게이머 시절 프로다운 선수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신도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했고 이승석은 점차 자신의 성격과 프로게이머라는 승부사의 직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동료들도 그렇고 관계자들도 '착한 선수'라고 미화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프로답지 못한 선수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이 맞아요. 제가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딱 하나 후회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프로답지 못했던 것 아마도 그것이 지금 저의 위치를 만든 것 아니겠어요?"


[피플] 이승석 "프로게이머여서 행복했어요"

◆e스포츠가 준 최고의 선물은 친구
이승석은 e스포츠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친구'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e스포츠가 준 최고의 선물인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승석은 e스포츠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면 날개 없는 천사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정말 소중한 인연들이 생겼어요. SK텔레콤 동료들은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들이죠. 싸우기도 하고 힘든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짜 친구가 됐어요. 은퇴를 선언했지만 지금도 계속 동료들과 연락해요. 저보다 먼저 은퇴했던 최호선, 얼마전 은퇴한 (김)택용이와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있어요."

특히 김택용의 집과 이승석의 집은 5분 거리라고 합니다. 왠지 두 선수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요. 이승석은 김택용이 마냥 귀엽다며 색다른 매력이 있는 친구라고 치켜 세웠습니다. 최호선은 SK텔레콤에서 가장 많이 다퉜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라고 합니다. 이승석에게는 그렇게 친구라는 소중한 선물이 생겨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친구라는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들과 맺은 인연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20대를 바쳤던 e스포츠가 가져다 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앞으로 사회 나가서도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피플] 이승석 "프로게이머여서 행복했어요"

이승석은 앞으로 프로게이머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응원해 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전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멋진 사회인이 돼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함께 말입니다.

"이승석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주는 팬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어디에 있던 e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멀리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지금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많은 분들이 더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e스포츠의 한 부분으로 있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다른 분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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