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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도재욱 "웃으며 떠날 수 있어 행복해요"

[피플] 도재욱 "웃으며 떠날 수 있어 행복해요"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헤어짐은 슬픈 일이지만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면 이별 해야 할 시기를 제대로 선택해야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평소에 자주 인용되죠.

연예인 가운데에도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신이 가야 할 때라는 확신이 들어 은퇴를 선언했던 심은하는 아직도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 속에 최고의 연기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스포츠 스타 가운데서도 아직 더 할 수 있다고 팬들이 생각할 때 과감하게 은퇴를 결정해 더욱 기억에 남는 스타도 있죠.

그러나 유독 e스포츠에서는 '아름다운 이별'을 했던 프로게이머가 별로 없습니다. 최고의 위치에 있던 선수가 불명예를 안고 퇴출되기도 했고 실력이 하락해 밑바닥을 경험한 뒤 소위 말하는 벤치만 지키는 '퇴물'이 됐을 때 물러서는 선수들이 더 많았습니다.

SK텔레콤 도재욱이 군입대를 한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팬들이 깜짝 놀랐던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밑바닥까지 경험하지는 않았던, 바로 얼마 전까지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에 출전해 현존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고 있는 STX 이신형을 잡아냈던 도재욱이었기 때문에 그의 은퇴는 팬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유독 많은 선수를 떠나 보낸 뒤라 도재욱의 군입대 소식은 기자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SK텔레콤에서 그리고 e스포츠에서 도재욱은 성적 이외에도 팬들에게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줬던 선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를 보내기에 우리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었던 것도 사실이었죠.

도대체 그는 왜 지금 시기에 군입대를 결정했던 것일까요? 아직 그를 더 보고 싶은 팬들의 마음을 저버리고 군입대를 선택한 도재욱의 솔직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아마 팬들이나 관계자들에게 도재욱의 이미지를 묻는다면 '재미있는 선수', '말이 많은 선수'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할 것입니다. 도재욱이 진지하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항상 재치 넘치는 말 솜씨와 엉뚱한 행동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도재욱은 누구보다도 진지했고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그의 진면목이기도 한데요. 도재욱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고 지는 것을 정말 싫어했던 진정한 프로였습니다.
[피플] 도재욱 "웃으며 떠날 수 있어 행복해요"

도재욱은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 왜 은퇴를 결정했냐는 물음에 "실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예전 성과에 취해 자신의 객관적인 실력을 알지 못하는 선수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죠.

"프로게이머를 계속할 이유가 없었어요. 1년, 2년 마우스를 쥐고 있어봤자 최고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열심히 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때를 확실히 알고 과감하게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얼마 전 그는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고 있는 STX 이신형을 프로리그에서 잡아내며 다시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재욱은 "그래서 더 그만둬야 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객관적인 전력이나 데이터로 평가했을 때 누가 더 유리할 수는 있지만 못 이길 상대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신형을 이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더라고요. 이미 저는 프로로 평가 받고 있지 못한 것이죠. 제가 속한 집단에서 프로로서의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면 떠나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도재욱은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가장 분노했던 시기가 바로 이 때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신형과 자신의 맞대결이 결정됐을 때 팬들이 상대팀 에이스에게 1승을 헌납하는 의미로 쓰이는 '논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며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도재욱의 평소 성격이라면 그저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도재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지한 프로였습니다.

"어떤 프로게이머가 지기 위해 경기를 나갈까요? 논개라는 말은 프로게이머에게는 정말 치욕스러운 평가입니다. 프로게이머가 한 경기를 나가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이야기죠. 그래도 e스포츠에서 프로게이머였다고 자부했는데 '논개'라는 말을 들으니 그동안의 제 노력까지 모두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전 '논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 나갔고 이긴 것은 기적이 아닌 노력의 대가였습니다."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프로게이머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항상 유쾌한 모습만 보여줬던 도재욱. 그러나 '논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을 때 그는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던 프로게이머였습니다.
[피플] 도재욱 "웃으며 떠날 수 있어 행복해요"

그 분노가 결국 도재욱에게 '이제는 떠날 때'라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프로게이머가 프로로 팬들에게 평가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자신이 떠날 때라고 예전부터 생각했던 도재욱은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던 군 입대를 현실로 옮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후회 없는 프로게이머 생활 "행복했어요"
도재욱에게 물었습니다.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요. 아마 그가 스타리그 4강에서 리버스 스윕으로 생애 첫 결승전에 오른 순간이나 팀이 프로리그 우승을 했던 순간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재욱 입에서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도재욱은 한 치의 가식도 없이 진심을 다한 표정과 말투로 "매 순간이 행복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 은퇴를 앞둔 프로게이머를 인터뷰하면서 처음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프로게이머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면서 하루 하루를 무료하게 살았겠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프로게이머였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동료들과 밥 먹는 시간까지도 너무나 즐거웠어요."

매 순간이 행복했다는 도재욱. 하지만 반대로 그에게도 힘든 시기는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는 언제 가장 괴로웠을까요? 이번에도 의외의 답변이었습니다. 데뷔 후 6연패를 기록했던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0대3 패배를 당했을 때는 의외로 힘들지는 않았어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괴롭거나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꿈 꾸던 스타리그 결승전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어요. 그런데 데뷔하고 난 뒤 6연패를 했을 때는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피플] 도재욱 "웃으며 떠날 수 있어 행복해요"

도재욱은 야반도주를 하려는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이름이 알려진 프로게이머도 아니었고 팀과 계약에 돼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 새벽에 몰래 도망친 뒤 '잠수를 타면' 누구도 자신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몰래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기적과도 같이 도재욱은 야반도주를 꿈 꾸고 있었을 때 첫 승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때의 짜릿한 기분을 잊지 못해 결국 도재욱은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프로게이머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고 하네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도재욱에게 프로게이머는 필연이고 운명이었습니다. 매 순간 행복을 느꼈던 도재욱이 그런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하지만 도재욱은 행복했기 때문에 오히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솔직히 군입대 이후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해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행복했던 기억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서예요. 계속 퇴물 취급을 받으며 경기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팬들이 '기적'이라는 말을 하는 프로게이머로 기억되는 것이 싫었죠. 저는 행복했던 프로게이머 생활을 계속 행복하게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프로게이머였던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었기에 마지막을 아름답게 떠나고 싶었던 도재욱. 그가 얼마나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고 자부심을 느꼈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수하고 유쾌한 청년이었던 도재욱의 진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것 역시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재욱을 떠나 보내는 팬들은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도재욱은 웃으면서 떠났고 너무나 행복했고 후회도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우리는 이제 도재욱을 웃으면서 떠나 보낼 수 있겠네요.

"팬들도 저에 대한 행복한 기억만 남겨 두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을 하든 제가 프로게이머였다는 자부심은 항상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제가 제대했을 때는 e스포츠가 더 발전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팬들도 e스포츠 관계자 분들께서도 계속 열심히 노력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한번 팬들께 감사 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넘치는 사랑 주신 팬들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떠나는 순간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도재욱. 행복한 기억만을 안고 떠나는 도재욱의 뒷모습을 보며 '낙화'의 첫 구절이 다시 한번 생각났습니다. 떠나갈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도재욱의 뒷모습이 참 아름다워서 더욱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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