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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그라피] '겜' 좀 알던 아이…허영무①

[게이머그라피] '겜' 좀 알던 아이…허영무①
◇2012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에서 올해의 프로토스상을 수상한 허영무.

안녕하십니까.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입니다.

이번 '게이머그라피'의 주인공은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의 마지막 우승자인 삼성전자 칸의 프로토스 허영무입니다.

2012년 8월4일 펼쳐진 마지막 스타1 스타리그 결승전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습니다. 1999년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을 시작으로 막을 연 스타1의 방송리그는 한국에 e스포츠라는 문화가 뿌리내린 대회였습니다. 30여 번의 스타리그가 열렸고 그와 비슷한 숫자의 MSL이 진행됐죠. 2012년 마지막 스타리그를 관전하기 위해 잠실학생실내체육관을 찾은 팬들은 1만 여 명에 달했습니다. 누가 우승할지도 관심거리였지만 스타1의 마지막 공식리그를 관전하기 위해 모인 인파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자리에선 두 명의 선수는 삼성전자 칸 허영무와 SK텔레콤 T1 정명훈이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개인리그에서 준우승을 상당히 많이 차지했던 터라 '2인자'라는 평가를 받았죠. 두 번 연속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맞대결하는 것도 이슈였고 이전엔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허영무가 2회 연속 우승, 프로토스 사상 첫 프로토스 2연속 우승을 달성할지, 반대의 경우가 나오면서 스타리그의 주인공은 테란으로 마무리될지 상당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우승자는 모두가 알고 있듯 허영무였습니다. 한 때 '겜알못(허영무가 한창 풀리지 않던 시절 '게임도 알지 못하는 너희들이…'라는 글을 남겨서 생긴 별명)'이라 불렸던 허영무는 마지막 스타1 스타리그의 우승자로 영원히 남았습니다. 허영무의 프로게이머로서의 일대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지요.

[게이머그라피] '겜' 좀 알던 아이…허영무①

◇2006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삼성전자 칸 김가을 감독(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한 허영무(가운데).

◆게임 좀 알던 소년
허영무는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팬들을 만날 때에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수줍음을 타는 듯하지만 동료들끼리 있을 때에는 전형적인 부산 사나이로 변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를 주름잡았던 성격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허영무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나가 놀았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이 동네 놀이터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어머니가 "저녁 먹어라"라고 말하기 전까지가 노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허영무는 10살이 되던 때 스타크래프트를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한창 PC방이 들어서면서 초등학생들의 놀이터가 더 이상 동내 운동장이 아니랄 PC방으로 전환되던 시기였죠.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했을 때에는 저그로 플레이를 했어요. 동네형이 저그가 제일 쉽다고 하더라고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서 어떻게 유닛을 뽑고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지요.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게임인 것 같아서 포기하고 동네 놀이터로 돌아갔던 기억이 나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잊고 살던 허영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다시 잡았다. 허영무가 스타크래프트를 다시 하게 된 계기는 대항전이었다고 합니다. 스타크래프트로 반 1위를 가리는 대항전이 열렸고 허영무의 승부욕에 불이 붙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전혀 모르던 허영무는 불과 1년만에 학교를 대표하는 실력자로 거듭났죠.

"프로토스를 접하면서 실력이 급상승했죠. 반 1등, 학교 1등을 차지하고 나서는 다른 학교와 대항전을 치렀어요. 각 학교의 최상급에 있는 학생들끼리 PC방에 모여서 프로리그 방식으로 대회를 치렀어요. 다른 선수들은 져도 저는 지지 않았어요.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죽자살자 덤볐죠."

그렇게 '게임을 좀 알던' 허영무는 삼성전자의 러브콜을 받고 프로게이머가 됐습니다.

[게이머그라피] '겜' 좀 알던 아이…허영무①

◇2006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프로게이머가 된 허영무의 동기들. 붉은 색 원 안에 있는 선수가 허영무.

◆삼성전자로 갈 운명
허영무가 삼성전자 칸에 입단하던 과정에서도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우선 준프로게이머 자격증을 따야 하죠. 부산 지역에서 날고 길던 허영무도 당연히 커리지 매치를 통과해 준프로게이머 자격을 얻었습니다.

당시 준프로게이머 자격을 주는 커리지 매치는 매달 선발전을 치렀습니다. 1년 동안 열린 커리지 매치에서 자격을 얻은 선수들만해도 100여 명이 넘었죠. 그 가운데 팀의 색깔에 맞는 선수들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두 번의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합니다.

허영무는 드래프트가 열리기 하루 전 삼성전자의 연습생 테스트를 봤습니다. 경상도 지역에서 알고 지내던 이성은의 추천을 받은 허영무는 테스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합격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죠.

막상 드래프트 현장에 갔을 때 허영무를 노리는 팀이 꽤나 많았습니다. 특히 하위권 탈출을 노리던 이스트로가 허영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죠. 삼성전자에 입단 테스트를 본 뒤 가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허영무는 이스트로에 갈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걱정이 컸지만 김가을 감독이 초반에 허영무를 선택하면서 기우가 됐지만 허영무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떨렸던 무대였다고 합니다.

[게이머그라피] '겜' 좀 알던 아이…허영무①

[게이머그라피] '겜' 좀 알던 아이…허영무①

◇서바이버 토너먼트와 프로리그 무대에 섰던 허영무. 신인들 가운데 데뷔가 이른 선수 축에 끼었습니다.

◆낭중지추
2006년 상반기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전자에 입단한 허영무는 초반부터 도드라진 성적을 냈습니다. 개인리그에 올라가기 위한 예선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을 만나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06년말에는 하부 리그인 듀얼 토너먼트와 서바이버 리그에서 연승을 달리는 등 신인들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허영무는 2007 시즌 프로리그에서는 주전으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으면서 송병구와 함께 삼성전자 칸을 이끄는 핵심 선수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허영무의 상승세는 2007년 8월에 열린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에서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256명을 선발해 사흘간 치러진 이 대회에서 허영무는 8강까지 한 세트도 패하지 않으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서경종, 박재혁, 최가람, 박명수 등 강력한 저그 선수들을 연파했고 16강에서는 '스피릿'으로 이름을 날리던 박지호마저 2대0으로 완파했죠. 4강에서 구성훈을 잡아낸 허영무는 이제동을 상대로 첫 결승전을 치렀습니다.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두 떨어진 상황에서 이제동과 허영무의 결승전은 다소 김이 빠진 듯했지만 경기력은 역대 최고였습니다. 이름값이 다소 떨어질 뿐, 향후 e스포츠계를 이끌어나갈 새싹들의 대결에서 허영무는 아쉽게 1대2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만약 허영무가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천하무도 경연대회라는 별명이 붙었던 대회이기도 합니다)에서 우승했다면 2인자가 아닌 1인자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요.

2편에서는 잔혹했던 허영무의 2위 인생사를 짚어보겠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SK텔레콤과 함께하는 e스포츠 세상(www.sktele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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