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e-sports

[GamerGraphy] 사신이 운명의 칼을 휘두르기까지…오영종편(1)

[GamerGraphy] 사신이 운명의 칼을 휘두르기까지…오영종편(1)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질럿공장장서 두뇌형 플레이로 업그레이드

'사신'은 죽은 자를 인도하는 신을 말한다. 서구의 팬터지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지만 스타크래프트 안에서도 사신이 형상화되어 있다. 바로 다크 템플러다. 스타크래프트 일러스트에 보면 언덕 위에 올라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어깨에 망토를 두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프로게이머 가운데 사신과 가장 익숙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선수는 공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영종이다.

◆질럿 공장장
오영종이 '사신'으로 불리기 전까지는 업그레이드의 과정을 거쳤다. 이전 별명은 '질럿 공장장'. 게이트웨이를 쉼 없이 돌리면서 생산에 박차를 가하지만 생산된 유닛은 대부분 질럿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프로토스의 계보를 보면 크게 두 계파로 나뉘어진다. 초기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장악했던 '가림토' 김동수가 선보인 두뇌형 플레이와 박정석에 의해 개척된 양산형 플레이가 메인 스트림으로 뽑힌다. 김동수는 유닛을 많이 생산하기 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뽑은 뒤 부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유닛을 사용하는데 주력했다. 반면 박정석은 게이트웨이 숫자를 최적화시키고 나서 얻어들이는 자원을 모두 공격 유닛으로 환원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오영종은 후자의 계보를 잇고 있다. 플러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박지호의 영향을 받은 오영종은 질럿을 뽑아내는 능력은 역대 최강으로 뽑힌다. 유닛이 워프되는 타이밍에 게이트웨이로 부대 지정을 옮겨 또 다시 생산하고 공격을 시도하면서 상대가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사실 프로게이머들의 초창기를 보면 대부분 양산형이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기본기라고 불리는 유닛 생산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승률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인을 선발할 때 손놀림, 특히 생산력을 눈 여겨 본다. 조정웅 감독도 오영종의 생산력을 높이 샀다.



◆치욕의 프로리그 데뷔전
2003년 데뷔한 오영종은 비공식전을 통해 신인의 티를 벗었다. MBC게임이 주최한 신인왕전에서 첫 선을 모인 오영종은 iTV나 스카이라이프 신인왕전에 나서면서 경기 경험을 쌓았다.

오영종에게 공식전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소속 팀인 플러스(현 화승)가 프로리그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프로게임단 12개가 모두 참가하는 대회로 문호를 넓혔지만 2003년과 2004년에 열린 프로리그는 예선전이 존재했다. 11개 프로게임단 가운데-당시에는 공군이 없었다-8개 팀을 선발해 프로리그 또는 팀리그에 나설 기회를 줬고, 플러스는 대표할 선수도 없고 선수층도 얇았기 때문에 번번이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오영종은 스스로 공식전에 나설 기회를 만들었다. 2004년 8월에 열린 오프라인 예선을 통과했고 스타리그로 가기 위한 하부 리그인 챌린지 리그에 나섰다. 그렇지만 쉽지 않았다. 팬택 안석열을 만나 1대2로 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2004년 11월 오영종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플러스가 프로리그 예선을 통과했고 오영종이 개인전에 나선 것. 그렇지만 처음 얻은 기회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오영종은 외국인 선수에게 패하면서 치욕을 맛봤다. 테란 플레이어인 브라이언에게 진 오영종은 신인이 가진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게이트 웨이는 찍기 위해 존재한다
프로게이머, 특히 프로토스 종족은 '찍는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게이트웨이에서 병력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유닛을 찍는다는 다소 상스러워 보이는 단어를 쓴다. 원조는 박정석이지만 박지호와 오영종이 이런 단어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특히 오영종에게는 찍는다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질럿 공장장'이기 때문이다.

2005년 오영종은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4월과 5월에 거쳐 열린 다음 다이렉트 듀얼토너먼트 무대에서 오영종은 이재훈과 나도현을 연달아 꺾으면서 조 1위에 올랐다. 이후 1위 결정전을 위한 선발전에서 한승엽과 최수범을 모두 잡아내며 조 1위 결정전 최종전에 진출했다. 이 때 1위 결정전에서 승리한 선수에게는 스타리그 직행권이 주어졌다. 스타리그 본선 시드는 3위까지 주어졌고 4번 시드자로 듀얼토너먼트 1위자가 뽑혔다.

오영종의 상대는 안기효였다. 오영종은 안기효와 한 세트씩 주고받는 혈전을 펼친 끝에 스타리그 본선에 4번 시드자로 진출했다.



◆사신의 탄생
2005년 8월 시작된 So1 스타리그는 오영종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대회다. 이 대회를 발판 삼아 오영종은 프로토스의 대를 이을 대표 주자로 꼽혔고 소속 팀인 플러스는 해체의 위기에서 벗어나 화승과 인수 협약을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4번 시드로 스타리그 본선에 오른 오영종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한빛 김준영과 첫 경기를 치렀다. 이 때만 하더라도 오영종은 '질럿 공장장'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평이하게 경기했고 무난하게 이겼다.

결정적으로 오영종의 어깨에 망토가 둘러진 경기는 홍진호와의 16강 2차전이었다.'알포인트' 맵에서 열린 경기에서 오영종은 승산이 없어 보였다. 프로토스에게 강하던 홍진호를 상대해야 했고 오영종의 저그전은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영종은 모두의 눈이 정화되는 플레이를 펼쳤다. 대각선에 위치했지만 질럿과 드라군으로 강하게 밀어붙였고 홍진호가 방어에 신경쓰는 사이 다크 템플러를 네 기나 모아 공격을 시도했다. 오버로드 컨트롤에 신경쓰지 않던 홍진호는 깜짝 다크 템플러에 앞마당을 초토화당했고 본진까지 습격을 당하면서 무너졌다. 오영종이 '다크 템플러의 화신', 즉 '사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영종의 변신은 프로토스의 진화 과정과 맞물린다. 스타크래프트 리그 초창기에 김동수가 보여준 것처럼 전략형 플레이가 통하는 듯했지만 트렌드가 전환되면서 양산형, 물량형 플레이어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갔다. 오영종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다크 템플러 타이밍 러시라는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면서 전환기를 만들어냈다. 오영종이 보여준 플레이는 김택용으로 이어지면서 커세어와 다크 템플러를 조합한 플레이로 거듭났고 혁명적인 트렌드가 됐다. 홍진호와의 경기는 오영종이 전략과 생산의 교집합을 만들어내면서 트렌드 전환의 디딤돌이 된 기념비적인 치적을 남긴 일전으로 평가된다.

분위기를 탄 오영종은 8강전에서 서지훈을 상대로 또 다시 다크 템플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네오 포르테'에서 다크 템플러로 터렛을 치워내면서 승리한 오영종은 '사신' 이미지를 굳혔다.

8강에서 서지훈을 2대1로 꺾고, 4강에서는 최연성을 3대1로 제압하며 로열로더에 한 발 다가선 오영종의 최종 관문은 임요환이었다. 2003년을 제외하고 매년 스타리그 결승전에 올랐던 백전노장 임요환과의 경기는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인천시립전문대 체육관에서 열린 So1 스타리그 결승전은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 가득 찼고 온게임넷이 별도의 PDP를 설치해 운동장에서 관전해야 할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경기 내용도 대박이었다. 오영종의 생산력과 임요환의 전략성이 버무려지면서 2대2까지 진행됐고 '라이드오브발키리즈'에서 오영종이 임요환을 무너뜨리면서 조정웅 감독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사신이라는 별명 앞에 '로열로더'라는 칭호가 붙은, 오영종과 조정웅, 플러스로서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바로 2005년 11월5일이다.

*2편에서 계속

thenam@dailyesports.com


<Copyright ⓒ Dailygame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슬라이드

데일리랭킹

1젠지 17승 1패 +29(34-5)
2T1 15승 3패 +24(32-8)
3한화생명 15승 3패 +19(30-11)
4KT 11승 7패 +8(26-18)
5DK 9승 9패 0(21-21)
6광동 7승 11패 -7(18-25)
7피어엑스 6승 12패 -11(16-27)
8농심 4승 14패 -16(14-30)
9디알엑스 3승 15패 -21(11-32)
10브리온 3승 15패 -25(8-33)
1
2
3
4
5
6
7
8
9
10
1
2
3
4
5
6
7
8
9
10